2007년 11월 14일 수요일

16년 전 유서대필사건을 아십니까?

오늘 퇴근길에 나를 너무 분노하게 만든 뉴스를 접했는데, 그 뉴스는 다름아닌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조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노태우의 629선언을 이끌어냈던 87년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91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듯 하고, 유서대필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뉴스가 나온지 2시간이 지났지만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 91년에 대한 기억이다.

본 블로그는 IT전문 블로그, 범위를 좁혀서 인터넷전화(VoIP) 전문 블로그를 지향하지만, 이 소식을 접하고 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91년 당시 나는 혈기왕성한 대학생이었고, 그 사건 현장에 있으면서 깊은 좌절을 맛보고 지금 내가 가진 가치관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그 사건을 전하고자 한다.


도대체 91년에 무슨 일이 있었나?

91년에 1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경찰 쇠파이프에 맞아 죽거나, 자신의 몸에 기름을 뿌려 분신해서 죽어갔다. 도대체 91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91년 2월 27일 명지대 발전위원회가 결렬되고 학교측이 등록금을 일방적으로 고지하자, 명지대학교 총학생회는 곧바로 등록 연기를 결의하였다. 3월 16일 학교당국의 불성실한 모습에 자극을 받은 학생들은 민주계단에서 집회를 갖고 총장실 무기한 폐쇄, 총장실 집기를 본관 앞으로 들어내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교당국에서는 학생회 간부 몇 명을 제적하겠다고 협박을 하였다.)
3월 22일 총학생회 진군식 이후 민주적 등록금 책정과 언론탄압분쇄를 위해 학내 집회와 부총장실 점거농성, 삭발, 혈서투쟁 등을 진행하던 중 상명여대(현 상명대) 학원자주화 집회에서 지지, 연대 연설을 하고 돌아오던 박광철 명지대 총학생회장이 불법 연행되었다. 이 사실을 안 명지대학교 학생들은 즉각 투쟁을 전개하였고,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경찰은 페퍼포그 3대와 사복전경 10개 중대 1,200여명을 동원하여 학교 주변을 둘러싸고 무력 진압을 예고하였다.
4월 25일 12시부터 6시까지의 시위에 이어, 4월 26일 12시 민주계단에서 22명의 여학생이 서부서 항의방문투쟁 출정식을 갖고 서부서로 향했고, 3시 '학원자주화 완전 승리와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및 총학생회장 구출을 위한 결의대회'를 치른 이후 전경과 대치하였다. 경찰은 유인작전을 구사하며 시위자를 검거하기 위하여 골목까지 백골단을 배치하면서 폭력적인 강제 진압을 하였다. 바로 이 과정에서 강경대씨가 백골단들로부터 집단 폭행 끝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4월 27일 연세대에서 1만여 명의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모여 '폭력 살인 규탄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결의대회'를 가졌다. 그리고 4월 29일에는 박승희(전남대)씨가 분신했고, 5월 1일에는 김영균(안동대)씨가, 5월 3일에는 천세용(경원대)씨가 분신하였다. 5월 4일 16만 명의 학생시민이 모여 백골단 해체를 외쳤으나 4월 6일에는 박창수씨가 안양병원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으며, 8일에는 김기설(전민련 사회부장)씨가 서강대에서 분신하였다.
5월 9일에는 전국적으로 30여만명이 모여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국민대회를 가졌다. 5월 14일에는 강경대의 장례행렬이 경찰에 의해 막힌 채 밤 10시까지 투쟁을 전개하다가 연세대로 운구를 옮겼다. 5월 18일 2차 장례 중 연세대 앞 굴다리 위에서 이정순씨가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하였고, 19일 새벽 운구행렬이 광주에 도착했으나 경찰이 광주 진입을 막았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의 투쟁으로 도청 앞 노제를 사수하고 마침내 5월 20일 망월동 묘역에 강경대씨의 시신은 안장되었다.
(출처 : 성공회대학교 사이버NGO 자료관)

위 글에서 본 것처럼 처음 시작은 학내민주화 운동으로 촉발된 명지대학교 내 시위에서 비롯되어 경찰의 무리한 강경진압으로 인해 강경대 열사가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다. 이에 학생들이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는데 경찰의 강경진압은 계속 되었고, 학내 민주화 투쟁으로 시작된 학생들의 투쟁은 점점 커져서 정권퇴진운동으로 발전했고,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국민들도 참여하는 범국민투쟁으로 전개되었다. 이 와중에 수 많은 사람들의 분신이 이어지고 김귀정 열사는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쫓겨 충무로 골목에서 경찰의 폭력에 죽음을 맞았다. 필자도 이 당시 충무로 골목에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진압이 얼마나 살벌하게 진압되었는지..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를 참고하시길..

 
(신촌에서 있었던 강경대 열사 장례식)

87년 이후 흔히 말하는 넥타이 부대까지 나서서 정권퇴진운동을 벌인 것이 1991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 와중에 터진 사건이 바로 '강기훈씨 유서 대필 사건'이다. 수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 항거했고, 김기설 열사가 유서를 남기고 분신을 했는데 정권에서는 강기훈씨에 의해 유서가 대필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전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91년 정권퇴진운동은 이 사건을 계기로 급속히 쇠퇴하게 되는데, 이 때 활약한 사람이 바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이야기했던 김지하 시인, "죽음을 사주하는 어두운 세력이 있다"고 분신의 배후로 빨갱이를 지목했던 서강대 박홍 총장이 있었다.


유서대필 vs 유서대필 조작,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나?

91년 당시 강기훈 씨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감정 결과 하나로 인해 구속되었는데, 이는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이나 일반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당시 민주/진보세력은 양심이라는 덕목이 최고였고 국민들도 대부분 인정하고 있었기에 북한의 사주를 받아서 분신을 하고, 분신을 종용한 사람이 유서를 대필했다는 사건은 그 자체가 충격이었고, 민주/진보세력는 기나긴 암흑기를 거치게 된다. 이는 92년 대선 결과에 그대로 투영되어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압승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이 유서대필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91년 당시에도 조작설은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유서대필이라는 사안 자체가 워낙 충격적이라 조작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점점 멀어져갔다. 오늘 보도된 내용을 보면

"진실화해위는 이날 오후 설명회를 열고 “분신 자살한 김기설씨의 필적이 담긴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을 새로 발견해, 검찰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사건 자료·증거물과 함께 국과수 및 7개 사설 감정기관에 필적 감정을 의뢰했다”며 “모든 기관에서 유서의 필적은 유서 대필 혐의를 받았던 강기훈씨의 필적과 다르고 김씨 본인의 필적이라는 감정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객관적인 감정을 위해 문서감정실 감정인 5명 모두 참여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진실화해위는 덧붙였다." (한겨레신문)

16년이 지났지만 늦게라도 진실이 밝혀진 점은 너무 다행이다. 하지만 유서대필 장본인으로 지목되어 고통 속에 살아왔을 강기훈씨와 거리를 뛰어다니며 민주화를 외쳤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응어리는 어떻게 풀 수 있겠는가? 이번 결정을 내린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법원에 재심을 권고했다고 하는데.. 법원에서는 이미 끝난 재판 결과에 대해 번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91년에 유서대필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대필 의혹이 불거졌을 때 국민들이 동의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가정을 허락하지 않을뿐 아니라 되돌릴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역사가 준 교훈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 보수진영의 압도적 우위 속에 이명박/이회창 후보가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고, 흔히 말하는 민주/진보세력은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형국이다.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핵심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는 것인데, 그들이 이야기하는 이 잃어버린 10년 세월 동안 군사정권 시절 자행되었던 수많은 반인권적인 사안에 대한 바로잡기가 있었다.

해방 후 50년 동안 한나라당의 가치 기반인 보수 정권이 권력을 잡았고, 그 기간 동안 수 많은 인권 탄압이 자행되었고, 50년 동안 수 많은 보수관료/학자가 쉴새 없이 배출되었고, 철옹성에 가까운 보수언론 집단도 형성되었다.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지만, 유서대필사건이 없었다면 잃어버린 15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권을 잡아놓고도 인재풀이 없어서 국정 운영이 미숙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자행되었던 반인권적인 사건에 대해서 조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나는 더 좋다.

16년전 조작 사건의 전모가 오늘에야 밝혀졌듯이 역사는 후대에 다시 평가를 받아 완성된다. 올 12월에 우리가 행한 선택은 20년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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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본 글에 "진리경찰"이라는 블로그에서 글의 내용과 너무 동떨어진 트랙백을 무려 10개를 보내 주셨습니다. 고민하다가 삭제하기로 했습니다. 혹시 그 분의 주장이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리경찰님은 트랙백 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댓글 62개:

  1.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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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유서대필 사건 담당 검사와 판사의 실명을 공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책임있는 사과와 함께 현직에서 물러나야할 것입니다.

    양심없는 법률가 권력의 하수인일 뿐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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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당시 대학초년생이었던 나는 선배들을 따라 시청앞에서 거의 보름동안 가투를 했던 기억이 새삼 생각나네요.

    말씀하신 대로 누군가에 의해 거짓으로 포장된 사건으로 당시 엄청난 국민적 충격이 이제야 진실이 밝혀진 유서대필사건을 보면서..

    진실은 밝혀졌더라도 조작에 참여했던 자들은 여전히 권력층,언론사 어디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겠고 이 기사를 보면 미치놈들 하면서 비웃고 있겠지요. 진실은 밝혀져도 벌금형 하나 때리지 못하는 정의가 사라진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서 여전히 가야할 길은 너무 멀고 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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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그땐 그랬어요, 최소한 분신을 할 수 밖에 없도록 압박감을 주진않았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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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trackback from: 직장인의 로망.....떡값??
    떡값, 직장인의 로망~ 정말 추석. 설날이 되면.....요번 떡값은 얼마일까..... 떡값을 늘 기다리게 된다 ^^ 가족들과 오손도손 떡국을 먹으라고, 송편 만들어먹으라고, 주는....그 돈이 떡값 아니던가~??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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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당시 재판에서 국과수측에서 필적감정가로 나온사람이 나중에 다른 사건에서 감정결과조작으로 구속된걸로 압니다.

    늦었지만 사실이 밝혀져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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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그때 그렇게 죽어간 사람이 있었기에

    그대들이 이렇듯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것임을

    감사하라.

    어떤 또라이들은 지들 잘나서 세상 좋아진 지

    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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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진실화해워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 이런 기관들의 조사는 대부분 부실하고 예단을 가지고 맞춰놓은거라서 파견 검사들도 혀를 내두른답니다.

    아마 정권 바뀌면 또 엎어질거니까 섣불리 흥분하거나 단정하지는 맙시다.

    다 예상한 결과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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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그때, 사건을 담당하였던, 검사/경찰/증인들..

    모두 다 밝혀야 한다.

    역사 앞에 다 밝혀서, 그 죄를 물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도,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서, 힘없는 이를

    억압하고, 짓발는 x들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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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진리경찰.. 저분.. 좀 안됐네.. ㅉㅉ



    그때.. 정말.. 폭력진압에 울분을 못참던 내또래의 젊은 사람들..

    정말 분개했고.. 그래서 울분을 못참고 분신까지 하셨는데..

    유서대필 사건하나로..분신에 배후가있다..분신순서정해놓았다..등..의 논란으로..

    민주화운동의 기세가 완전히 껶여버린 결정적인 사건이었는데..

    이제야 진실이 밝혀진건 고맙지만..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네요..

    앞으로 더 밝혀져야할 조작사건들이 무수한데...

    하루빨리 밝혀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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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이 땅을 도둑질한 집단들의 더러운 피고름이 아직도 닦여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곳의 댓글에 뻔뻔한 소리를 늘어 놓고 있는 유전자는 과연 우리 민족일까요?

    아니지 싶습니다..

    수 십년 범죄와도 같이 뭉쳐서 이해관계 속에 찜쪄 먹던 나라가 국민 손으로 돌아왔지만, 그동안 길러진 인재풀이 부족하여 시행착오가 있기에 단순한 국민들이 '힘든 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말이 아픕니다.

    그것이 민주정권의 탓이 아니죠..

    진실을 덮고 이 나라를 농단한 세력은 지금이라도 회개해야 합니다.

    그들은 친일파가 독립세력을 빨갱이로 몰아 살아 남은 방법을 지금도 써먹고 있습니다.

    진실을 하나씩 밝혀 이 나라에 좀은 더 성숙하고 정의로운 사회질서가 구축되었으면 합니다.

    더러운 댓글에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매국노는 손가락을 잘라 버리시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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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정의 없는 검찰과 법원의 행태는 아직도 변한게 없습니다.

    그 보다 더 한놈은 박홍 같은 놈이지요.

    양심으로 웅변해야 할 종교인이 극우집단의 대변인 꼴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놈은 지금도 총보다 무서운 독설로

    양심세력들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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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저도 저 뉴스보고 흠짓했습니다.

    저 사건 기억이 나는데.. 저 일때문에 시민운동단체를 엄청 매도했었죠. 강기훈이란 사람은 완전 나쁜넘되었구... 이제와서 진실이 아니었다고 하니 황당할 나름입니다. 90년대 초반에도 저런 일이 가능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군요. 그저 7-80년대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앞으로는 저런 일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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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진실이 이제서야 밝혀졌다는게 너무 화가 나네요

    정말...뭐라고 해야할까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도 해결되었으면 좋겠고,

    더불어, 더이상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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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Anonymous - 2007/11/14 09:51
    추천 감사합니다. 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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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운동권에 이쁜여자애들이 어쩌고 하는 리플이나 달고있는 한심한놈이 아직도 살고 있다니...

    하기사 사람이 다 제정신을 가지고 산다면 저런일도 일어나진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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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안타까운 사람들...저 진리경찰뿐만 아니라 친북좌익이니 하면서 아무런 논리나 설득력없이 감정적으로 타인을 아프게 하는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는 사람들....

    당신들 입에서 그렇게 아무말이나 자유롭게 내뱉을수 있는 이 사회도 결국 앞서간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걸 생각이나 하는지....

    그 분들이 없었다면 당신들은 그런 글 올릴 자유조차 가지지 못했을 겁니다.

    나와 "다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분들...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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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운영자 - 2007/11/14 11:15
    검찰이나 경찰은 부실하지 않아서 조작했답니까? 정권바뀌면 또 바뀐다는 말씀은 또 조작할거라는 겁니까? 아이디나 "운영자"로 조작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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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이 일이 크게 알려져야될텐데요!



    그들 보수 땅나라당이 "10년"이 아니라 "영원"을 잃게 만들 수도 있을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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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세상이 조와지긴 많이 조와진모양이군요

    왜 이런엉터리 판결을 내린 판 검사 담당햇던 조직원들의 이름들은 항상 감춰지는지 또 그소리를 정말이라고 밋고잇엇던 사람들

    이해가 안가요 오래 산 분들은 대게들 알았엇는대...

    29만여원박에 없다는분이 아직도 건재한걸보면 아직도 어렵내요

    남의죄를 판단하는사람이 죄를 젔을때는 무지 엄한벌을 줘야하는대

    그런사람들이 더 잘살더라구요

    담당햇던 판 검사들 국민들의 심판을 밧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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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기억 속에서 아련했었던 사건이었는데요 다시금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를 과거로 후퇴시키는 일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텐데 너무 걱정입니다.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무력진압에 무기력하게 그리고 무고하게 죽임 당했던 바로 그 진실을 더이상 왜곡하는 정부가 들어서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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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필적대조를 보니 대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데.

    시대가 바뀌니 증거도 바뀌는 세상인가?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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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저도 신촌에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최루탄이 터졌고, 지하철까지 숨쉬기가 힘든 곳이었습니다.

    그 전해에 김영삼씨가 어이없는 합당을 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아서 아직도 전 5월 9일 하면 민자당 합당일이라는 생각밖에 안나는데...



    사실 1991년에도 전 강기훈씨를 믿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심지어 김영삼까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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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뉴스에 잠깐 나온 내용 가지고 너무들 흥분하고 개인적으로 지나치게들 흥분하는 것 같은데 필적 대조한 증거자료 보고나면 그런 흥분은 가라앉을 것이라 봅니다.무조건 운동권은 양심세력이고, 깨끗하고,민주화세력이라고 봐주는 것도 위험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넘들 가운데에도 사기꾼도 있고 정치꾼도 있고 북한 일꾼도 있습니다. 생각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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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개인적으로 당시 유서대필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에 와서야 진실이 밝혀지는군요



    그런데 내용에 보면 당시 분신 하신분들 의문사 하신분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대부분 모르는 일인지...

    썩어바진 언론들이 떡하나 물고 입을 다물고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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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눈물이 나네요.

    진실은 언제가 밝혀진다는 단순한 진리가 생각납니다.



    잃어버린 10년이 그 누군가에겐 돌아가고픈 과거이겠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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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유서대필 사건이 조작이었느냐, 아니면 강기훈씨가 무죄일뿐이냐는 아직 재 조사를 해본 후에나 정의 되어질수 있는 문제 입니다.

    유서대필이 아니었는데 특정 세력에 의해 대필사건으로 기획,조작하여 특정목적으로 이끌고 간 사건인지 아니면 당시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그러했듯이 단지 감정상의 오류와 한계였는지..그것도 아니면 그 당시 감정이 맞았던 것인지를 온 국민이 동의할수 있는 범위내에서 재 조사를 한후에나 결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그 유서 대필 사건으로 인하여 당시 노태우 정권으로서는 반정부 투쟁에 찬물을 끼얹고 진정시키는 목적 달성이 가능했고 또 우리 사회로서는 애꿎은 젊은이들이 속절없이 분신하며 목숨을 끊는 도미노를 진정시키는 실익이 있었다는 뜻 입니다. 님이나 저나 우리는 살아 남아서 이런 말들을 할수 있는 존재입니다. 속절없이 죽은 그들에게는 뭐가 남았습니까?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 같은 영광이라도 돌아 갔습니까? 그 가족들의 아픔을 압니까? 누가 알아 주기나 하고 있습니까? 전 그 유서대필 사건의 가장큰 의의는 유행처럼 번져 나갔던 젊은이들의 분신을 진정시킨 계기가 되었다는점에 더 큰 무게를 둡니다. 저도 올해 마흔의 당시 현장을 누비던 복학생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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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이미 몇년 전에도 MBC PD수첩인가 어떤 프로그램에서 강기훈 대필 위조사건에 대해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도 필적 감정의뢰한 민간의 사설필적감정소마다 모두 대필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무조건 운동권은 양심세력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사건에 대해서 바로잡고 훼손된 명예를 되찾아 주자는 것인데,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럼, 실제로 사건이 조작된 것이 밝혀졌다고 해도 일부 운동권 중에서 사이비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냥 덮어야 한다는 겁니까? 이상한 논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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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사건입니다. 한 사람을 이렇게 만신창이를 만들고도 잠이 오는가 봅니다. 지금이라도 그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재판과 수사에 참여했던 자들의 이름을 공개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추궁해야 합니다. 정말 열받고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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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그당시도 정부 발표를 믿지는 않았지만 정말 조작이었다는 것을 알고 새롭게 충격 받았습니다. 그일로 억울하게 형을 살아야 했던 강기훈씨에 대한 안타까움은 물론이고 그당시 운동권에 부당하게 쏟아졌던 도덕성에 대한 논란들..ㅠㅠ.."죽음의 굿판"이 아닌 "조작의 굿판"을 벌인 기득권층은 무릎꿇고 사죄해야 합니다. 그 일을 주도한 이들 뿐만 아니라 동조하고 무언가 행동하려 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비난을 퍼부었던 사람들 모두..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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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당시 전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조선일보 사설기사를 보고 운동권을 욕하기도 했던 철업던 아이였죠...



    이제 어른이 되어

    사회에 조금 눈을 뜨고 나니

    이 나라가 얼마나 한심한 나라인지

    숨이막혀 살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오늘

    당신이 있어 대한민국은 조금이나마 살만한 공간이 된거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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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너무나도 억울하고 어이없는 소식입니다.. 91년도면 저도 한참 공안정국과 싸웠던 시기였는데 강기훈씨 대필사건이 조작되고 날조되었다니.. 물론 그때 정부가말한것을 믿지도 안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혼란스러웠을 사건이었음에는 틀림없었습니다. 벌어지만도 못한 전두환 노태우정권을 몰아내려고 그렇게도 싸우고 죽고 병신되고 했지만, 이 대필사건한나로 깡그리 무너져버린 우리들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받을지??? 그때 하늘로 사라져간 열두세분의 죽음은 헛되지않게 살아있는 우리가 정말 올곧게 살아야 합니다..컴퓨터앞에서 댓글을 읽어보니 그때가 생각나서 마냥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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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응무소주 - 2007/11/14 13:16
    필적감정을 했다지 않습니까? 전문가들에게.

    당시 외국 전문가들은 모두 같은 필적이 아니라고 했는데도 법원에선 국과수 감정실장의 의견만 인정했었고요. 그 넘은 뒤에 다른 민사상 문서에 거짓감정을 해준 죄로 감옥에도 갔었죠. 응무소주이생기심 - 마땅히 머무른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아뒤가 아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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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그당시 무기력하게 방관만 하였던 자신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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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부럽습니다"에서 "끄"가 빠졌읍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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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당신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무슨일을 했소이까??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시요~~~ 젊은 똥개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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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지금 그 결론은 정확한가? 아니 의심스러워 좌빨들이 하는짓은

    도저히 믿을수도 믿어서도 안되지 노태우때보다 더 악랄한짓을

    빨씨들이했다는거 다안다 진실 화해 어쩌구 느그들끼리 짜고치는 고스톱이 아니겠는지 교묘한 수법으로 또다시 어떻게 해보려고...그만두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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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사부장 - 2007/11/14 09:52
    그러네요. 억울한 사람만 있고, (어찌되었든 암묵적) 가해자는 그저 묻혀버리면 안되죠. 늦게라도 밝혀서, 잘못을 반성하고, 법을 집행하는 일의 준엄함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안그러면 가해자 없는 피해자만 양산할 거고, 가해자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는지 안지었는지도 반성하지 못한 채 도덕적으로 무감한 사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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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무조건적인 선악 구분, 흑백 구분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기에

    제가 윗글에서 문제 재기를 하는 것 입니다.



    유서가 대필이 아니었다면 강기훈씨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음은

    두말할 나위없이 자명해 지는것 입니다.



    강기훈씨에 대한 심적,물적 고통에 대한 피해는 당연히 국가의 책임이고 그 책임은 곧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요 몫입니다.



    나는 나일뿐이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나와 전혀 무관한 객체가 아니라는 뜻 입니다.



    아울러 그 사건이 의도한 조작에 의해 대필 누명을 씌운 사건이었다면 재심을 통해서 당연히 조작에 관계된 사람들을 명명백백히 밝혀 내고 처벌하여야 함에 마땅히 동의 합니다.



    정의를 세우는 그 처벌의 주체또한 정의감으로 뭉친 우리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되며 우리들이 포함된 대한민국이요, 정의를 숭상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질서가 그들을 응징 하는것 입니다.



    그러나 지금에서라도 다행히 누명이건 오인이건 조작이건에 의해서 억울히 잃어버린 세월과 명예를 회복하게 된건 다행이지만

    스스로 유서를 남기고 분신한 김기설님을 비롯한 그 사건 당시의 분신 열사들의 존재감을 이야기 하는것 입니다.



    그 유서대필 사건(혹은 유서대필 조작 내지는 혐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분신 자살에 대한 순수성이 의심을 받게 되었고 그러한 의심은 무 이성적으로 욱 하는 혈기와 정의감에 의해 감성에만 휩싸인체 도미노 현상처럼 번져가던 시점이었습니다.



    김기설님이 분신후 강기훈씨가 유서 대필자로 지목되어 사건이 대서특필되며 일파만파 됨으로써 도미노처럼 번지던 분신 자살에 대해 이성적으로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부인할수가 없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이 유서대필 사건이 있은 이후 분신이 그쳤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운동권의 집행부로서 그렇게 분신이 그쳐지고 민주화 운동이 주춤해진 사실에 대해 안타까울지 몰라도 그렇게 분신 자살이 멈춰짐으로써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린 대학생을 둔 부모님들이 더 많았다는 뜻 입니다.



    아울러 그 도미노가 한동안 더 지속되어 졌더라면 민주 항쟁의 지도부가 아니라 일개 군중 학생에 불과 했던 우리들도 욱하는 심정의 한 사람이 될수도 있었고 또한 그랬던 당사자들은 오늘날 모두 이자리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단언컨데 그 당시의 분신 자살은 일종의 유행처럼 번져 나가던 도미노 현상과 유사 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성보다 감성이 우세 하던 시절이었던것 같습니다.



    분신자살이 아닌 다른 투쟁 방법도 많았지만 그때는 극단적인 분신이 너무 격하게 난무했다는게 그당시로서의 저의 강한 느낌이었음이 세삼 또렷해 집니다.



    그당시 김지하님의 죽음의 굿판을 집어 치워라라는 글로서 분신에 경종을 울리던 글이 있었던 것으로 막 생각이 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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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유서대필 조작건으로 인해 '분신'정국이 중단된 것은 어느정도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노태우 정권의 억압적 관리'가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왜 그리 많은 분들이 분신을 결심하게 되었을까요?

    이제라도 유서대필의 증거물이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발표된 것에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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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말이 좋아,진보민주지?2007년 11월 14일 오후 2:39

    더 하더만,김영삼 이후로 민주랍시고,진보랍시고 등장해서(물론 사기나 치고 구라나 쳐서 된 정권)깽판칠만큼 쳤어니 이제는 그쪽에서 하는 어떤 말도 공감이 안가니....

    그 잘못은 보수한테있고,조중동에게 있나?

    아니면 진보,민주꼴통들에게 있나?

    대통령만들어준게 좌파떨거지들 먹고 살게하기위해,공무원 늘려서

    부의 분배를 이루기위한것인지??

    지들 눈깔은 지들이 찌른것이지 국민은 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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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그때 당시를 기억해보면...뉴스에 나오는 필적은 분명 달라 보였다...그런데 이번에 강기훈씨 인터부를 보면 당당한 것을 보니...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아마도 죽을 놈이 죽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죄의식을 갖지 않을 것 같다...배신자였거나 뭐 그런...누군가가 죽었고 급조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만약 그 전에 죽겠다고 말한 적이 있고 추락사했다면, 수사를 완결시키지 위한 과정으로서 그러한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증명할 수 없는 부분에 뭐라 하는 건 문제다...그로인해 감옥에 가고, 그만한 형벌을 격었으니...친구의 죽음을 지키지 못한 벌은 다 받았다고 본다...진짜 살인자는 그러한 갈등은 만든 사회체제라 할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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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왜 이리 개념들이 없어. 여기서 좌빨꼴통 이딴 단어가 왜 나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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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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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딱 보니 알바티가 나는군요... 말이좋아,진보민주지...



    꼴통... 어따대고 지적질인지...참...



    김영삼과 딴나라가 그렇게 잘해서 나라가 그 모양이 됐고많은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그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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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감사합니다.~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관심없이 지나갔던 일들인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네요.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있는 놈들이 다 잡고 있으면서, 그자리를 자기 자식들에게 온건히 물려주려고 온갖 짓을 다하는 사회네요. 한심한 이 나라, 세상을 바로보고자 노력하면 좌파, 빨갱이라 몰아부쳐 가볍게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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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조금만 진지하게 살아보십시요2007년 11월 14일 오후 4:00

    @응무소주 - 2007/11/14 13:16
    유행처럼 분신이 번져나갔단 말,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던져야 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절박하게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실익만을 따지는 당신의 생각이 엄밀히 말하면 노예근성입니다. 던져주는 먹이에 감사하며 주인을 위해 죽도록 일해야 한다는 생각. 내가 주장해보았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 결국 힘있는 자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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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항상 91년의 투쟁이 잊혀진 것이 가슴아팠다

    강경대 열사로부터 시작된 투쟁으로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던 나는 87년은 이야기 하면서 그많은 열사가 나오고 2만의 시민이 대구를 누볐던 그때가 잊혀진게 서러웠다. 유서대필사건이 밝혀진것이 고맙지만 다가온 대선의 정국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말도 안되는 후보들이 저들끼리 옥신각신하는 동안 민주후보는 당선가능성은 커녕 내부조차 어지럽기만 하고, 또다시 비례대표 생각에 찍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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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그때 누가 정권을 가지고 있었나?

    온갖 사기와 음모로 정권 잡아 온 한나라당

    그들에게 다시 정권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니다.

    경제 경제 하지 말라

    그들이 정권 잡으면 서민들은 더 못살게 된다.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화될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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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그러게요..정말 큰일입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니..겨우 찾은 10년이었는데..

    이제 우리는 다시 그 기나긴 투쟁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되는건가요..

    어떻게해서든 그것만은 막아야하는데..

    정말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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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우리나라국민은 왜 과거의정권이 저지른 천인공노할일을 금방잊어버리고 또다시 저들에게 정권을맡기자고요?에라! 더러워서 이민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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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박홍이란 사람이 글을 읽다보니깐 미워지네요...아주 인간 말종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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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어이 - 2007/11/14 12:56
    야이 개세야..니가 전쟁나면 총들고 전쟁터에 갈꺼냐..저기 사기노바 맹박이나 희대의 사기노바 창이 처럼 개노릇 하지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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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4050대 비슷한 연배님..사회 정의를 많이 잊고 살아 오진 않았는지요! 살기 바뻐 우리아이들에게 너무 권력과 돈의 아집에 빠지는 삶을 남겨 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반성합니다.비록 제 아이는 초등학생이지만 사회전반에대해 알려주려합니다.위 이야기도 한 예제가 되겟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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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글쎄요 - 2007/11/14 13:24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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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87년 ..지금의 아내를 그때 만났지만 데이트보다도 시위에 참가를 더 했던 기억이 납니다.그핸 아마도 거의 일을 안하고 시위만 해서 생계 문제도 걱정스럴 만큼이나. 강기훈 대필사건으로 정말 언론에서 요란했지요.지금이라도 진실이 규명되어 다행입니다.당시의 투쟁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유가 있는것이지요.이번 12월 대선이 걱정이 됩니다.역사를 되돌리려는 세력의 지지표가 많다는 암울한 이야기들때문에 우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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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응무소주 - 2007/11/14 14:11
    님의 글 많은 부분 동의합니다. 많은 분노와 절망이 있었고 바라지 않는 슬픈일들이 많았죠.



    그러나 유서대필 사건으로 분신이 끝나고 그것이 실속이었다는 말은 참 슬픈 표현이라 생각되네요. 실속은 다른 이들이 가져갔겠지요. 그리고 돌아가신 분들이 남긴 것은 제 마음속에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운동권의 집행부라는 사람들도 분신이 그치고 운동이 주춤해진 것에 대해 안타까워 했을 것이라 했는데, 그 때 주변 이들이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까 서로 염려했던 기억이나네요. 분신이 그치어 운동이 주춤해져서 안타까워 했던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남겨 둔 채 운동이 주춤해지는 상황에 대한 절망감으로 안타까워 했지요.



    그리고 온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재조사를 해야 알 수 있다. 라는 말이나, 정의를 숭상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질서가 그들을 응징하는 것이다. 라는 말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신 분이라 무의미한 말이란 것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전제가 없거나 있을 수 없기 때문이죠.



    16년이 지난 세월 그리고 이제 40대라 하신 님의 기억과 세상을 보는 방식도 소중합니다만, 자칫 옳지 않은 것과 타협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오해가 생길까 염려됩니다.



    김지하의 "죽음의 굿판을 집어 치워라" 마지막은 절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원래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였는데 조선일보에서 입맛에 맞게 고쳐 나왔던거라죠. 절망으로 죽지 말아라와 '욱'하는 심정으로 개인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지 못해 죽지 말아라는 이해의 깊이가 다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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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당시 유서대필이라고 희대의 사건으로 신문들이 장식할때 하도 궁금해서 직접 신문에 난 글자들을 회사 복사기로 여러번 최대한 확대해 보았는데 내가 봐도 유서와 강씨의 글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걸 회사사람들에게 보여주니까 전부다 정말 다르다고 했는데 결국 강씨는 형을 살고 말았죠. 참 우습기도 하고 국과수라는 사람들이 어째 회사에 있는 복사기보다 못한 장비를 가졌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문서검증한 국과수 실장인가 김형X 라는 사람이 결국은 다른 민사사건의 엉터리 검증을 하고 돈받아 먹다 감옥으로 가더군요.그사람이 또 조선일보인가에 나와 그때 검증은 맞다고 주장하길래...참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사람은 문서조삭을 한두번한게 아니고 여러번 해먹다가 들어간 사람인데 그 검증을 누가 믿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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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그당시 운동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유서 대필 했다고 안믿었습니다

    그때야 검 경찰이 사건 조작이 자기들 업이었으니

    어째든 유서대필 의혹 사건으로

    운동권이 몰락하는 가장큰 계기가 된게 안탑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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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전혀 몰랐던 일입니다. 82년생으로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유서대필조작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이제서야 정확히 알게 되네요. 그러고보면 우리사회에 '조작'과'진실'이 어디까지 얽혀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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