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시사_정치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시사_정치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7년 12월 18일 화요일

이명박 특검에 사표방지 심리 되살아나나?

이제 대통령선거 투표일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의 BBK 연루 의혹에 대해서만 이슈가 집중되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정책 공약은 이슈파이팅조차 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막판 이명박 특검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안개정국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사실 대선이 다가오면서 본 블로그에 대선 관련 글을 써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VoIP 전문 블로그란 정체성 확립이 올해 블로그 운영의 가장 큰 목표였던 탓에, 정치 관련 포스팅을 한다는 것이 제 글을 RSS를 통해 구독해 주시는 200명 가까운 분들께 어떻게 비칠지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향후 5년 동안 내 인생, 아니 모든 국민의 인생을 좌우할 대통령 선거를 맞이해서 마냥 입을 닫고 있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 선택이다. 특히 개인적으로 당선되지 않기를 바라는 후보가 온갖 비리 혐의에도 불구하고 1위를 달리고 있는 현실이 본 블로그에 정치글을 자꾸 쓰게 만드는 이유이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선거때마다 기승(?)을 부리는 사표에 대한 것이다. 액면 그대로 선거권을 행사했지만 죽은 표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지금의 판세를 본다면 정동영 후보 지지를 둘러싸고 개혁세력 내에 이인제, 문국현, 권영길 후보가 사표 이데올로기에 시달릴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BBK 연루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었을 때 이번 대선은 이명박 후보의 압승으로 싱겁게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온갖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가 거의 40% 전후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었는데, BBK와 관련이 없다는 검찰 발표는 한나라당에게 과반 득표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심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광운대 특강 동영상이 공개되고 국민들의 이명박 후보에 대한 의혹이 커지자 후보 자신이 특검을 수용하는 초강수를 두는 상황이 발생했다. 개혁세력 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정동영 후보는 자신으로 이명박을 꺾을 수 있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고, 자신이 개혁세력의 단일후보임을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상했던대로 민주당 내에서 민주세력의 대동단결을 주장하며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사표 심리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였다. 노무현-정몽준 연대가 선거 하루 전날 정몽준의 지지철회로 위기를 맞았는데, 노무현 지지층을 더욱 결집시킨 것은 물론이고 권영길 후보 지지자 중 상당수가 당시 노무현 후보를 찍었다. 내 기억으로 노무현 후보가 50만표 정도 차이로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 중 상당수가 선거막판 터진 정몽준 배신 선언으로 인한 사표 심리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내 주변에서도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행사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2002년과 같은 사표 심리가 또 다시 권영길 후보의 지지율을 갉아먹을 것인가?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충분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특검을 수용한 이명박 후보는 아직도 압승을 주장하고 있지만, 개혁세력 내에서는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정동영 후보로의 줄서기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이명박 후보의 압승을 예상하고 자신이 원래 지지하던 권영길 후보로 결정한 사람들도 "이명박 낙선"이라는 대의(?) 앞에 다시 한번 선택을 강요받지 않을 수 없는 미묘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기 때문에 이런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그 동안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이명박 지지율을 낮추기 위해서 반이명박 포스팅을 몇 차례 했는데..이제는 권영길 후보 지지를 공식적으로 해야 할 듯 하다.

나는 대선 득표율이 총선 득표율보다 더 많은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고 믿는다. 어떤 분들은 대선에서는 정동영 밀어주고 총선에서 민노당 밀어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데, 지난 몇 번의 선거에서 항상 들어왔던 이야기이다. 한국 내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존재하고 민주노동당도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 일정정도의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데, 왜 대선만 되면 평소의 지지율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항상 살펴보면 '비판적 지지' 등으로 포장된 사표방지 심리가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정치적 실체에 걸맞는 지지율을 대선에서 획득하는 건 모든 정치세력에게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탄핵의 반사이익으로 국회의원을 10명이나 보유했던 민주노동당의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기존 보수/중도 정치세력이 본받아야 할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

현재 대선 구도가 이명박, 이회창, 정동영의 예측불허 상태인지?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의미있는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 너무나 궁금하고 꼭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2007년 12월 16일 일요일

아직도 이명박 후보 지지하세요?

BBK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아무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낸 검찰의 수사결과를 무색하게 만든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이 동영상은 2000년10월17일 이명박 후보가 광운대 특강에서 한 발언인데, 이 날은 박영선 통합신당 의원이 당시 MBC 기자 신분으로 이명박 후보를 인터뷰한 날과 같은 날이라고 한다. 동영상을 보시면 이명박 후보가 MBC와 인터뷰를 하고 왔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 동영상이 공개된 배경도 참 우스꽝스럽다. 동영상을 촬영한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치권을 향해 거래를 시도했다고 하는데, 그 금액이 무려 100억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되느냐 안되느냐가의 가격이 100억원이나 된다는 이야기인데.. 여튼 한나라당의 신고로 협박범은 붙잡혔고, 나머지 두 사람은 양심선언을 하겠다며 신당 측에 해당 동영상을 제공했다고 한다. 조만간 경찰도 압수한 동영상 모두를 밝힐 예정이라고 하니..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하다. 오늘 공개된 내용은 "BBK를 이명박 본인이 설립했다"는 내용인데, BBK에 투자를 권유하는 동영상도 있다고 하니..




한나라당에서는 이 후보가 "2000년 1월 BBK를 설립했다"고 언급한 동영상에 대해서는 "동영상에 나온 내용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없다"며 "새로운 수익 모델을 갖는 금융 사업을 소개하면서 복잡한 사업들을 일일이 구분해서 설명하지 않고 동업자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정확한 표현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고, 검찰에서도 별 내용이 없다고 평가절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검찰 수사 발표 후 여론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가 BBK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검찰에서 관련이 없다고 발표를 했음에도 사정이 그러한데, 이번 동영상 발표와 더불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후보의 관련성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절반이 넘는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의 관련성을 의심하는데, 이후보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한다는 사실이다. 누구 말대로 여론조사 자체가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명박 후보가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명박 후보는 분명 BBK에 깊숙히 관여를 했다. 이 후보 주장대로, 검찰의 수사 발표대로 김경준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스스로 미래 산업이라는 인터넷금융 분야에서 30대 중반의 새파란 젊은이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라면 어떻게 국가 경영을 맡길 수 있고, 그런 후보가 어떻게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선거가 3일 밖에 남지 않았다. 원래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별도로 하더라도, 민주세력 후보 중에 찍을 사람이 없어서.. 그나마 이 명박후보라면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에 지지를 보냈던 분들은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나는 이명박 후보가 BBK에 깊숙히 관여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2007년 12월 13일 목요일

자사고 100개, 사교육비 1조 황금시장 형성?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자립형사립고 100개를 만들어서 한국 학생들을 똑똑하게 키우겠다는 교육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는 가운데,  강남 스타강사 출신인 이범씨가 이명박 후보의 교육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한 찬조연설 방송이 관심을 끌고 있다. 대통령선거 찬조 연설 방송이기 때문에 동영상이 20분 정도 되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은 꼭 보시기 바란다.

나는 이 찬조연설을 TV를 통해 생방송으로 보지는 못했고, 어제 웹사이트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내년 3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으로서, 유치원을 다니는 지금도 사교육비 지출이 부담이 되고 있는 나에게 이범씨가 들려준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어 전국적으로 자립형사립고 100개를 만들면, 연간 1조원의 사교육 시장이 신규로 창출될 거라고 한다. 현재 이명박 후보가 BBK 사태(?)에서 탈출하여 지지율 선두를 달리며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한국의 황금 사교육 시장을 잡기 위해서 외국 자본이 줄을 서고 있다고 한다. 참, 1조원의 경기 부양 효과도 있고, 외자 유치 기대효과까지 등에 업은 자립형사립고 100개. 이런 면에서 보면 이명박 후보는 경제 대통령감에 틀림이 없는 듯...

하지만 이런 식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외자 유치를 해서 경제가 살아날지도 의문스럽지만.. 그렇게 경제를 살려 놓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아마 초등학교 때부터 자사고를 보내기 위한 부모의 등쌀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저와 같이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부모 입장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고 나서 펼쳐질 1조 황금시장은 너무나 고통스러울 듯 하다. 교육은 100년지대계라고 했고, 5000만 국민 모두의 관심사이지만.. 자사고 100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아니다.

대선이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지지만.. 넋놓고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는 모습을 보기는 싫다. 아직도 정동영/이명박 후보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이 계신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길 부탁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2007년 12월 5일 수요일

BBK 빠져나온 이명박, 경제 살릴 수 있나?

오늘 그 동안 한국 정치판을 휩쓸었던 BBK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가 발표되었다. 며칠 동안 뉴스를 통해 흘러나온 뉘앙스와 똑같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BBK와 전혀 무관하다는 점만 강조되고 있다. 이를 두고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신당에서는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하는데, 일단 검찰의 발표 내용을 믿어보자. 이명박 후보가 BBK와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인가?

지금의 판세를 뒤흔들 새로운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후보가 대한민국의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나는 이명박 후보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을 포함한 보수 세력을 무지하게 싫어하는데, 지금의 판세를 바꿀 힘은 없다. 그렇다고 넋 놓고 이명박이 대통령되는 걸 지켜보기도 싫다. 이번 BBK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이명박씨의 모습을 좀 더 살펴보면, 이 사람이 정말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BBK 덫 나오려 스스로 바보가 된 이명박 후보

이명박 후보는 BBK와 관련해서 스스로를 바보로 만들었다. 이 사건은 인터넷과 금융이 결합된 새로운 사업모델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복잡하다. 일단 회사명이 모두 영문이기 때문에 일반국민들이 사실관계조차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 몇 이나 될지 의문스럽다.(필자도 기사를 대충 읽었기 때문에 사건의 윤곽만 알 뿐이다.)

일단 이명박 후보가 스스로를 바보로 만든 사실 관계만을 보자. 아래 인용하는 내용은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가 쓴 "공범 안 되려고 바보가 됐다?"에서 발췌한 것이다. 원문도 반드시 읽어보시기 바란다.

  • 이명박 후보는 김경준씨를 만난지 1달 만인 2000년2월18일에 LKe뱅크를 공동으로 설립하고 30억원을 투자한다. 이 때 김씨는 한 증권사에서 좋지 않은 일로 면직된 상태였는데, 이 후보는 아비트리지의 귀재라고 추켜세웠다고 한다.
  • 만난지 한달 밖에 안된 동업자에게 회사 인감을 맡기고 금융거래를 하게 했는데, 이 후보는 몰랐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돈 30억이 들어갔는데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몰랐다?
  • LKe뱅크가 마프펀드의 전환사채 1250만달러(그 당시 150억)을 구매했는데 이후보는 몰랐다고 한다. 당시 회사 자본금이 60억인데, 자본금의 두 배가 넘는 투자를 해야 하는데.. 30억을 출자한 이명박 후보는 몰랐다
  • 김경준은 이명박 후보의 지인들(친형, 지인, 친구등)으로부터 BBK에 245억이라는 거금을 투자받았는데, 이 후보는 몰랐다고 한다. 1억도 아니고 245억이다. 친형이 190억원을 투자하는데 몰랐고, 나중에 하나은행(5억원투자)이 이후보에게 가압류 소송을 진행할 때 알았다고 한다. 왜 아무 사실도 모르는 이후보에게 가압류 소송을 진행한 것인가?
  • 2001년4월18일 이명박 후보는 LKe뱅크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며, 김경준과의 동거를 끝냈다. 김경준씨는 LKe뱅크 이사직을 유지하며 이 회사 청산 작업을 마무리한다. 이 후보는 자신의 돈 30억이 들어간 회사의 청산 작업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 2001년 말 BBK의 후신 격인 옵셔널벤처스에서 횡령과 주가조작이 발생하고 나자 곧바로 일반 투자자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2004년 2월에 들어서야 소송을 제기했다(다스는 2003년에 소송 제기). 거액의 사기를 당했는데 몇 년 동안 그냥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상이 BBK 연루 의혹을 벗은 이 명박 후보가 보여준 행동이다.


이명박 후보, 정말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아무리 BBK 의혹을 벗고 주가조작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명박 후보에게 국가 경영을 맡길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명박 후보는 CEO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에 많은 부분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후보로 이명박 후보를 선택해서 지지를 바꾸었다고 한다. 현대 건설 CEO로서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이 후보가 토목의 이미지를 벗고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금융 인터넷 사업은 철저하게 실패했는데.. 과연 국가의 경영을 맡겨도 되는 것인가?

한국은 지식사회로 급속히 진화 중이다. 제조업도 중요하지만, 한국 경제의 미래는 지식과 관련된 산업의 성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후보가 BBK 연루 의혹을 벗었다고 하지만, 지식산업의 CEO로서 보였던 행태는 우리를 아연실색케 한다. 김경준 씨를 사기꾼이라고 치자. 이번 수사결과를 종합해 보면 이명박 후보는 한 명의 사기꾼에게 몇 년동안 계속 사기를 당했다는 것인데, 한 국가를 제대로 이끌어 나갈지 우려스럽다.


내가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 이명박 후보는 BBK 사건과 무관하다. 개인적으로 여전히 의구심이 무진장 많이 들지만 여튼 검찰의 수사결과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나온 사실 관계만을 종합해 볼 때 BBK 및 기타 회사의 경영자로서 이 후보의 대처 능력은 굉장히 떨어진다. 고로 "이명박=경제대통령"이라는 공식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경제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각인된 이명박 후보의 이미지를 버리고, 유권자 자신만의 기준으로 대선 후보들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2007년 11월 14일 수요일

16년 전 유서대필사건을 아십니까?

오늘 퇴근길에 나를 너무 분노하게 만든 뉴스를 접했는데, 그 뉴스는 다름아닌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조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노태우의 629선언을 이끌어냈던 87년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91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듯 하고, 유서대필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뉴스가 나온지 2시간이 지났지만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 91년에 대한 기억이다.

본 블로그는 IT전문 블로그, 범위를 좁혀서 인터넷전화(VoIP) 전문 블로그를 지향하지만, 이 소식을 접하고 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91년 당시 나는 혈기왕성한 대학생이었고, 그 사건 현장에 있으면서 깊은 좌절을 맛보고 지금 내가 가진 가치관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그 사건을 전하고자 한다.


도대체 91년에 무슨 일이 있었나?

91년에 1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경찰 쇠파이프에 맞아 죽거나, 자신의 몸에 기름을 뿌려 분신해서 죽어갔다. 도대체 91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91년 2월 27일 명지대 발전위원회가 결렬되고 학교측이 등록금을 일방적으로 고지하자, 명지대학교 총학생회는 곧바로 등록 연기를 결의하였다. 3월 16일 학교당국의 불성실한 모습에 자극을 받은 학생들은 민주계단에서 집회를 갖고 총장실 무기한 폐쇄, 총장실 집기를 본관 앞으로 들어내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교당국에서는 학생회 간부 몇 명을 제적하겠다고 협박을 하였다.)
3월 22일 총학생회 진군식 이후 민주적 등록금 책정과 언론탄압분쇄를 위해 학내 집회와 부총장실 점거농성, 삭발, 혈서투쟁 등을 진행하던 중 상명여대(현 상명대) 학원자주화 집회에서 지지, 연대 연설을 하고 돌아오던 박광철 명지대 총학생회장이 불법 연행되었다. 이 사실을 안 명지대학교 학생들은 즉각 투쟁을 전개하였고,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경찰은 페퍼포그 3대와 사복전경 10개 중대 1,200여명을 동원하여 학교 주변을 둘러싸고 무력 진압을 예고하였다.
4월 25일 12시부터 6시까지의 시위에 이어, 4월 26일 12시 민주계단에서 22명의 여학생이 서부서 항의방문투쟁 출정식을 갖고 서부서로 향했고, 3시 '학원자주화 완전 승리와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및 총학생회장 구출을 위한 결의대회'를 치른 이후 전경과 대치하였다. 경찰은 유인작전을 구사하며 시위자를 검거하기 위하여 골목까지 백골단을 배치하면서 폭력적인 강제 진압을 하였다. 바로 이 과정에서 강경대씨가 백골단들로부터 집단 폭행 끝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4월 27일 연세대에서 1만여 명의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모여 '폭력 살인 규탄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결의대회'를 가졌다. 그리고 4월 29일에는 박승희(전남대)씨가 분신했고, 5월 1일에는 김영균(안동대)씨가, 5월 3일에는 천세용(경원대)씨가 분신하였다. 5월 4일 16만 명의 학생시민이 모여 백골단 해체를 외쳤으나 4월 6일에는 박창수씨가 안양병원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으며, 8일에는 김기설(전민련 사회부장)씨가 서강대에서 분신하였다.
5월 9일에는 전국적으로 30여만명이 모여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국민대회를 가졌다. 5월 14일에는 강경대의 장례행렬이 경찰에 의해 막힌 채 밤 10시까지 투쟁을 전개하다가 연세대로 운구를 옮겼다. 5월 18일 2차 장례 중 연세대 앞 굴다리 위에서 이정순씨가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하였고, 19일 새벽 운구행렬이 광주에 도착했으나 경찰이 광주 진입을 막았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의 투쟁으로 도청 앞 노제를 사수하고 마침내 5월 20일 망월동 묘역에 강경대씨의 시신은 안장되었다.
(출처 : 성공회대학교 사이버NGO 자료관)

위 글에서 본 것처럼 처음 시작은 학내민주화 운동으로 촉발된 명지대학교 내 시위에서 비롯되어 경찰의 무리한 강경진압으로 인해 강경대 열사가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다. 이에 학생들이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는데 경찰의 강경진압은 계속 되었고, 학내 민주화 투쟁으로 시작된 학생들의 투쟁은 점점 커져서 정권퇴진운동으로 발전했고,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국민들도 참여하는 범국민투쟁으로 전개되었다. 이 와중에 수 많은 사람들의 분신이 이어지고 김귀정 열사는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쫓겨 충무로 골목에서 경찰의 폭력에 죽음을 맞았다. 필자도 이 당시 충무로 골목에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진압이 얼마나 살벌하게 진압되었는지..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를 참고하시길..

 
(신촌에서 있었던 강경대 열사 장례식)

87년 이후 흔히 말하는 넥타이 부대까지 나서서 정권퇴진운동을 벌인 것이 1991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 와중에 터진 사건이 바로 '강기훈씨 유서 대필 사건'이다. 수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 항거했고, 김기설 열사가 유서를 남기고 분신을 했는데 정권에서는 강기훈씨에 의해 유서가 대필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전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91년 정권퇴진운동은 이 사건을 계기로 급속히 쇠퇴하게 되는데, 이 때 활약한 사람이 바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이야기했던 김지하 시인, "죽음을 사주하는 어두운 세력이 있다"고 분신의 배후로 빨갱이를 지목했던 서강대 박홍 총장이 있었다.


유서대필 vs 유서대필 조작,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나?

91년 당시 강기훈 씨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감정 결과 하나로 인해 구속되었는데, 이는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이나 일반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당시 민주/진보세력은 양심이라는 덕목이 최고였고 국민들도 대부분 인정하고 있었기에 북한의 사주를 받아서 분신을 하고, 분신을 종용한 사람이 유서를 대필했다는 사건은 그 자체가 충격이었고, 민주/진보세력는 기나긴 암흑기를 거치게 된다. 이는 92년 대선 결과에 그대로 투영되어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압승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이 유서대필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91년 당시에도 조작설은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유서대필이라는 사안 자체가 워낙 충격적이라 조작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점점 멀어져갔다. 오늘 보도된 내용을 보면

"진실화해위는 이날 오후 설명회를 열고 “분신 자살한 김기설씨의 필적이 담긴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을 새로 발견해, 검찰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사건 자료·증거물과 함께 국과수 및 7개 사설 감정기관에 필적 감정을 의뢰했다”며 “모든 기관에서 유서의 필적은 유서 대필 혐의를 받았던 강기훈씨의 필적과 다르고 김씨 본인의 필적이라는 감정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객관적인 감정을 위해 문서감정실 감정인 5명 모두 참여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진실화해위는 덧붙였다." (한겨레신문)

16년이 지났지만 늦게라도 진실이 밝혀진 점은 너무 다행이다. 하지만 유서대필 장본인으로 지목되어 고통 속에 살아왔을 강기훈씨와 거리를 뛰어다니며 민주화를 외쳤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응어리는 어떻게 풀 수 있겠는가? 이번 결정을 내린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법원에 재심을 권고했다고 하는데.. 법원에서는 이미 끝난 재판 결과에 대해 번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91년에 유서대필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대필 의혹이 불거졌을 때 국민들이 동의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가정을 허락하지 않을뿐 아니라 되돌릴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역사가 준 교훈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 보수진영의 압도적 우위 속에 이명박/이회창 후보가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고, 흔히 말하는 민주/진보세력은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형국이다.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핵심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는 것인데, 그들이 이야기하는 이 잃어버린 10년 세월 동안 군사정권 시절 자행되었던 수많은 반인권적인 사안에 대한 바로잡기가 있었다.

해방 후 50년 동안 한나라당의 가치 기반인 보수 정권이 권력을 잡았고, 그 기간 동안 수 많은 인권 탄압이 자행되었고, 50년 동안 수 많은 보수관료/학자가 쉴새 없이 배출되었고, 철옹성에 가까운 보수언론 집단도 형성되었다.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지만, 유서대필사건이 없었다면 잃어버린 15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권을 잡아놓고도 인재풀이 없어서 국정 운영이 미숙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자행되었던 반인권적인 사건에 대해서 조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나는 더 좋다.

16년전 조작 사건의 전모가 오늘에야 밝혀졌듯이 역사는 후대에 다시 평가를 받아 완성된다. 올 12월에 우리가 행한 선택은 20년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PS> 본 글에 "진리경찰"이라는 블로그에서 글의 내용과 너무 동떨어진 트랙백을 무려 10개를 보내 주셨습니다. 고민하다가 삭제하기로 했습니다. 혹시 그 분의 주장이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리경찰님은 트랙백 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2007년 10월 25일 목요일

한나라당, 뻘짓 좀 그만해라...

덧>보통의 경우 제목을 정하고 글을 쓰는데, 이 글의 경우 글을 써 놓고 제목을 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읽어보시면 아실 것이다.

본 블로그는 IT전문, 아니 범위를 더 좁힌다면 웹2.0시대에 걸맞는 인터넷전화(VoIP)에 대한 분석 및 대안제시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그래서 본 블로그에서는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가급적 쓰지 않고 VoIP 전문 블로그에 걸맞는 내용을 쓰려고 노력 중인데, 요즘 포털 또는 블로거를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주에 한참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바로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블로거는 예비범죄자"라는 논리였다. 한나라당은 불순한 블로거들과 올블로그를 중심으로 한 메타블로그 사이트가 반한나라당 정서를 부추기는 소굴로 인식하고, 선관위에게 선거법에 근거해서 철저한 단속을 촉구하고 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메타블로그라는 개념조차 모르는 듯 하다. 메타블로그는 블로거가 자진해서 자신의 글을 등록하고, 수집되고 나면 사이트 방문자가 좋다고 생각되는 글을 추천해서 나름대로의 순위가 결정되고 메인에 노출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올블로그에 회원가입하고 글을 보내는(Feeding한다고 한다) 블로거의 대다수가 한나라당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간단하지 않은가? 한나라당이 "구당 결사대"라도 조직해서 친한나라당/친이명박 포스트를 많이 쓰고 올블로그에 노출시켜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글이 다른 올블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서 메인에 노출될 확률이 지금은 얼마나 될까? 미국에 Digg.com이라는 사이트가 있는데..이용자가 참여하는(이용자에게 편집권을 준) 새로운 미디어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가? FTA도 적극 지지하는 마당에 자신들의 대선가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죽이려는 시도는 중지하기 바란다.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이 되든 안되든 블로그스피어를 장악하기 위한 한나라당의 시나리오가 가동시키길 바란다.

어제는 좀 더 큰 메가톤급 폭탄이 터진 듯 하다. 이번 이벤트는 “정권 잡으면 너희 다 죽는다”… 이명박 ‘포털 회의’ 파문이다. 2002년 대선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패배한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포털의 댓글"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5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이명박 후보가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사건이다. 2002년 대선에서 네이버는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댓글 참여에 의해서 다음을 제치고 포털 1위에 등극했고, 지금은 7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아직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네이버 뉴스의 위력을 알고 있기에 이명박 캠프에서는 이명박 후보에게 불리한 기사가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 철저한 감시를 하고 있고.. 네이버는 평정되었다라는 어이없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최근 네이버는 메인 페이지의 뉴스 화면을 기사를 뽑는 방식에서 각 정당별 카테고리로 바꾸었는데, 이것이 한나라당이 손을  썼기 때문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변씨는 당시 포털의 뉴스편집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후보가 한나라당의 후보로 확정된 뒤, 불리한 기사는 전혀 포털 메인에 배치되지 않고 있다”며 “오마이뉴스의 ‘마사지’ 관련 기사는 예전이었다면, 분명히 포털 메인에 갔어야 하는데, 안 올라갔다. 아마도 포털이 이제 말을 갈아타려는 것 같다”고 발언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포털에서 불리한 기사가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다는 점을 알고 있느냐”고 이 후보에게 물었고, 이 후보는 “하도 많아서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진씨의 폭탄 발언은 이때 나왔다.
진 씨는 “변희재 씨가 포털에서 이명박 후보에 불리한 기사가 안 올라간다 했는데, 내가 밤새 전화 걸어서 막았다”며 “네이버는 평정되었는데, 다음은 폭탄이라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음의 석종훈 사장과는 이야기가 잘 되는데 밑에 사람들이 안 따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변씨는 “포털의 대규모 사업집단의 특성상, 주무부서인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공정거래위원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간 포털의 뉴스 편집이 친 정권적으로 흘렀다”고 주장했고, 다른 참석자 역시 “지금 포털이 이명박 후보에 유리한 편집을 한다고 해서, 그냥 덮어두면 안 된다. 포털의 문제는 유불리로 따지면 안 되고, 인터넷 전반의 공정한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씨는 당시 간담회를 끝나고 나오면서, 진씨 에게 “(포털에) 기사 올려 달라, 내려달라, 이렇게 사정하지 말고, 너희 정권 잡으면 죽는다며, 더 세게 나가시오”라는 조언까지 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폭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즉, 네이버 메인에는 이명박 후보에게 불리한 기사는 배치되지 않게 막았는데, 다음의 경우 여전히 메인에 노출되고 있고.. 특히 블로거뉴스에는 이명박 후보에게 불리한 기사가 여러 네티즌의 추천을 받아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포털 및 블로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세는 이번 대선에서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 2002년 대선에서 포털 댓글의 위력에 지레 겁을 먹은 한나라당은 포털 메인에 반 이명박 기사를 노출시키지 않고, 각 뉴스별로 달던 댓글을 하나로 모아서 달도록 하면 2002년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것은 한나라당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2002년과 비교해서 2007년의 인터넷 서비스라고 하는 것은 엄청한 지형변화를 겪고 있다. 물론 거대포털이 언론사와 비슷한 메인 페이지에 대한 편집권을 행사하고 있디만, 블로그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가 훨씬 가파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미리 간파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위 두가지 사건은 시간 순으로 보면 바뀐지 모른다. 이런 식으로 가정해 보자.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의 악몽을 떠올리며 포털에 개입해서 반이명박 기사가 메인에 노출되지 않는 것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네이버는 평정했고.. 다음의 경우 예의주시하는 상황까지는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올블로그를 비롯한 블로그메타 사이트에는 여전히 이명박 후보를 반대하는 글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한나라당의 인터넷 대응 시나리오에는 빠져 있었다. 그래서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이명박 캠프에서는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블로거를 예비범죄자로 몰고 선관위에 철저한 단속을 촉구한다. 왜냐하면 네이버는 평정되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위 시나리오가 맞는 듯 하다. 한나라당은 계속 성장하고 있는 블로그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포털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한 듯 하다. 다만 두 사건이 이슈화된 시점이 시간순을 역행해서 정두언 의원 발언이 먼저 터지고, 나중에 포털 장악 음모가 터진 것뿐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이 인터넷을 보는 관점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전 군사정권이 신문과 TV 뉴스를 자신들 마음대로 주물렀듯이, 이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로 성장한 포털만 틀어쥐면 된다는 생각이다. 한나라당 관계자 여러분, 인터넷 미디어에 개입할 생각 버리고..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는 정책을 만드시기 바란다. 그 정책이 옳다고 생각하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여러 블로거가 출현할 것이고.. 나중에는 한나라당이 올블로그를 어떻게 지원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아직 블로그를 비롯한 1인 미디어의 영향력은 많은 부분 포털에 의존하고 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걸리거나, 다음 블로거뉴스 헤드라인에 올라서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트래픽 폭탄을 안겨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올블로그를 비롯한 다양한 대안 서비스가 등장하고 성장하고 있다. 외국의 사례를 들어보면.. 지금 한나라당이 하는 짓은 야후나 구글에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가 올라가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 마이스페이스, 페이스북, 디그닷컴 등 다른 사이트에 올라가는 의견은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이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한나라당이여, 제발 뻘짓 좀 그만하시오. IT전문 블로그인 이 곳에 이런 글을 쓰게 만든 것은 다음 아닌 한나라당의 뻘짓 때문이다. 물론 이 글은 올블로그에 피딩이 될 것이고, 나의 생각에 공감하는 다른 분들의 추천을 받아서 메인에 걸리고 한나라당을 괴롭힐 것이다. 이게 현재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프로세스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어쩌면 한나라당의 뻘짓 때문에 이 프로세스가 네이버 메인보다 사람들에게 더 각광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개인적으로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평소 이 블로그에 이런 류의 글을 잘 쓰지 않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이 이 글을 읽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 블로거뉴스와 올블로그에 송고하는 것 밖에 없다. 올블로그는 차치하고.. 다음 블로그뉴스 메인에라도 오르게 하기 위해서 제목을 어떻게 달아야 할까 무척 고민이 된다. 제목을 과격하게 뽑을까,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도 한나라당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을까?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내가 생각한대로 제목을 달기로 했다. 왜냐하면 본 블로그에 대한 편집권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Daum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

2007년 6월 15일 금요일

YouTube는 미국 대선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Google의 YouTube가 미국 대선을 앞두고 CNN과 "The CNN YouTube Debates"라는 코너를 마련하고 일반시민들의 대선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이 소식은 구글 공식 블로그를 통해서 나왔는데, CNN에서 민주/공화당 예비후보들과의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고, 일반 시민들이 각 후보에게 묻고 싶은 내용을 YouTube에 동영상으로 업로드하면.. 채택된 질문의 경우 생방송 시간에 후보에게 전달되어 답변을 듣는 방식이다. 첫 방송은 6월 23일 민주당 예비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로서 질문 내용을 비디오로 촬용해서 제출하면 된다.

YouTube가 미국 대선을 위해서 마련한 프로그램은 지난 3월에 오픈한 "You Choose '08"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미국 대선과 관련해서 자신의 의견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올려 놓으면.. 그것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Comments), 평가(Ratings) 그리고 심지어 비디오 답변도 올릴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사이트를 방문해 본 결과 예상보다 올라온 동영상 수는 많지 않지만.. 흔히 말하는 동영상 UCC라는 것이 이번 미국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기를 이번 대선에서 신문/방송과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가 발휘했던 영향력이 감소하고 YouTube 등의 신규 미디어가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하는데, YouTube에 위와 같은 이벤트를 통해 한 발 다가가고 있는 듯 하다.

현재 YouTube가 미국 대선에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국내 상황을 돌아보자. 국내에서도 연말에 있을 대선을 앞두고 대선 UCC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비후보들 모두가 적극 나서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은 너무 지지부진하다.


선거를 6개월 정도 앞두고 있지만, 대선 이용자제작콘텐츠(UCC) 인기는 시들하다.
후보캠프에서만 동영상을 올릴 수 있고, 퍼가기도 안되며, 보는 이의 시선을 붙잡을 조회수 랭킹서비스도 안되기 때문이다. 내 의견을 댓글로 달고 싶어도 잘못하면 선거법상 사전선거 운동에 걸릴 까 주저하게 된다.
국내 1위의 UCC 사이트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판도라TV(대표 김경익)에 따르면 지난 3월 15일 야심차게 오픈한 대선 채널(http://2007.pandora.tv)의 페이지뷰와 방문자수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5월 31일 현재 누적 페이지뷰는 126만3천187(PV), 누적 방문자수는 25만4천685명에 불과한 것.

(출처: 아이뉴스24 "선거법 규제로 대선 UCC '시들'")

 

사실 개인적으로 지난 지방선거 때 어느 후보의 팬카페를 개설하고, 해당 후보의 정책을 올렸다가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역 선관위의 이야기를 듣고 얼른 삭제했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위와 같이 동영상을 올리지도 못하고 심지어 퍼가기도 안되고.. 랭킹서비스도 안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모든 것이 선거와 관련된 법과 관련되어 있을텐데, 낡은 법을 시대에 맞게 고치려는 정치권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대선이 6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언제 법을 고쳐서 이번 대선에 적용할 수 있겠는가?

결국 YouTube가 미국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 대선 이후 이에 대한 평가만 난무하지 않을까?

 


2007년 5월 18일 금요일

광주 민주화 항쟁 희생자 여러분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은 광주 민주화 항쟁 27주년 기념일입니다. 27년 전에 군부 정권의 총칼에 숨져간 모든 분들의 명목을 빕니다.
광주는 저의 10대 후반과 20대 전체를 지배했던 아픔이었습니다. 제가 광주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87년입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소용돌이치던 바로 그 때 우연한 기회에 광주 사태(그 당시에는 사태라고 불렀습니다) 사진전을 보면서, 정말 이것이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었습니다. 독서실에서 집에 가지도 않고 새벽까지 친구들과 도대체 광주사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토론을 했던 기억(부산이라서 그런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친구가 별로 없었어요), 집에 가서 부모님께 물어봤는데.. 정말 당황하시면서 정확한 설명을 안해 주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데..

대학에 가면서 광주는 더욱 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전두환에 이어 계속된 노태우정권 아래서 광주는 그들의 가장 아픈 아킬레스건이었기에..참 많은 사람들이 광주의 진실(그 당시 이것이 곧 민주화와 동일한 의미로 쓰였죠..)을 밝히기 위해서 죽기로 하고, 차디찬 철창으로도 갔던 시절입니다. 저도 가투(가두투쟁), 교투(교문투쟁)에 열심히 나갔는데.. 이건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모습일 겁니다. 광주에 대한 원죄의식은 보잘것 없는 저를 투사, 아니 혁명가로 만들었던 바로 그 시절이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저도 고생(?)도 좀 했는데...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이제는 참여정부에 이르면서 광주는 복권이 되었지만..아직도 저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원죄의식을 어쩔 수가 없군요.. 이제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지만.. 항상 광주가 우리에게 주었던 역사 의식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희생되신 모든 분들.. 하늘 나라에서 편히 잠드소서..

PS>아래는 안치환 씨가 부른 "마른잎 다시 살아나"라는 노래입니다. 학교 다닐 때 많이도 불렀는데.. 요즘은 아주 가끔 학교 때 친구들과 만나서 노래방이 아니면 부를 수도 없네요.. 혹시 모르시는 분은 들어보세요..